漢文

漢語

배상혁 2021. 5. 12. 02:20

序言

하늘아비추천 1조회 60714.05.08 16:57댓글 0

북마크공유하기기능 더보기

머리글

 

이 책은 갑골문, 금문, 주문, 전문까지는 각 글자가 이루는 요소들이 배달말의 소릿값의 조합이라는 것을 논증하는 책입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하((()의 삼대는 물론이고 시황제의 진()나라까지 우리 배달민족의 역사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정말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이 주장에 보통의 사람이라면 실소(失笑)를 범치 못할 것입니다. 역사란 사료에 의한 논증이 객관성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사료란 기록자의 주관이나 편견, 혹은 정치적인 목적 하에 얼마든지 왜곡이 가능합니다. 통신과 미디어가 발달된 지금에도 이러한 왜곡이 국가 간이든, 한 국가의 내부에서든, 혹은 개인적인 기억이든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에 견주어 볼 때, 歷史(역사) 定史(정사)일 뿐이지 正史(정사)라는 관념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어떤 역사를 직접 다루지는 않습니다. 현재 漢字(한자)라는 개념으로 세계 과반수이상의 사람들이 쓰고 있는 글자에 관한 자원(字源)을 밝히는 내용입니다. 글자란 결국은[소릿값]’의 모방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소릿값을 무시한다면 그것은의사전달을 위한 기호이지 결코 글자가 되지는 못합니다. 한자는 어떤 모양을 본뜬 형상을 기본자로 하여, 이런 기본자들이 두 서너 개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글자가 가지는 뜻은 배달말의 소릿값의 조합이라는 관점에서만 오롯하게 풀어집니다.

((() 삼대의 천자국과 제후국은 모두가 고대중국인들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가? 언어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의 적어도 2천년이 넘는 역사 동안에 천자의 나라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던 숱한 제후국들이 모두 다 고대중국어를 구사하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할 수 있는가? 지배층이나 로열패밀리의 언어가 일반 백성들의 언어와 다르기도 했으며, 때로는 동일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제후국 등 보다 복잡다단한 형국으로 보아야 타당하다 하겠습니다. 현재의 중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거의 대다수 사람들이 한어(漢語)를 사용하고 있지만, 70개 이상의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즉 다수의 이민족 국가의 형태입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 많은 언어가 존재했다고 하겠으며, 현재와 같은절대다수가 한어(漢語)를 구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고대 중국 땅, 아니 아시아 전역의 문화와 역사는언어학적인 측면에서배달민족의 역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볼 관), (물댈 관), (권할 권) (권세 권) 등의 글자들에서 공통 요소는 (황새 관)입니다. 왜 이새의 한 종류에 의해서 파생된 글자들에서 새와는 전혀 무관한 저토록 다양한 뜻을 나타내게 되는지는 배달말의 소릿값의 관점에서만 풀어집니다. 황새두루미라고도 하는데, 여기에서두루의 소릿값을 따와 [둘러보다], [두레 ; 아래에서 위로 물을 퍼 올리다], [두레 ; 농민들이 농번기에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하여 부락이나 마을 단위로 만든 조직 권하다 의 뜻], [두르다] 등의 뜻이 파생되는 것입니다. 특히 의 경우에는 權限(권한), 權勢(권세) 등의 성어에서는‘[/]두르다의 뜻이지만, 權道(권도), 權謀術數(권모술수)에서 이 나타내는 바는 세상의 그 어떤 언어로도 딱히 적시할 수 없지만, 배달말의둘러대다로 보면 나타내는 뜻과 소릿값의 완전히 일치됨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에 의한 이와 같은 배달말 소릿값의 조합에 완성을 이룬 것은 시황제의 전문(篆文)입니다.

현재 漢字(한자)의 개수는 7~8만자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전문(篆文) 자형은 대략 5천자 미만인데, 전문 자형이 없는 경우에는 상기와 같은 배달말 소릿값의 파생과 조합에 따른 새로운 의미의 유추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하은주의 삼대는 물론이고, 시황제의 진나라까지배달역사라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사서(史書)야 서술자의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으며 때로는 허위를 남길 수도 있지만, 자간(字間)의 사이, 행간(行間)의 사이에서 드러나는 언어인류학에서는 그 무엇으로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진실이 드러납니다.

 

주나라 5백 년간의 춘추전국(春秋戰國)은 한족(漢族)들만의 내부 분쟁이겠는가?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면 배달민족의 지배권에 대한 한족(漢族)의 반란이며, 여타의 이민족 국가들은 그 둘 사이에서 선택의 고민을 한 형국입니다. 그래야만 그 기간 동안의 이합집산의 맥이 정확하게 풀립니다.

 

 

 

 

비명(碑銘)을 찾아서

 

복거일의비명을 찾아서는 일제가 미국에 승리하고 조선 및 일부 동남아 지역을 계속 식민지배하고 있는 대체역사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입니다. 이 때의 조선인은 섬나라 일본에 대하여 반도인(半島人)이라는 명칭으로 자신들이 배달민족의 후손임은 물론이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존재 했었다는 것도 모른 채 일본어를 모국어로 쓰면서 천왕의 신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일, 아니 훨씬 더한 일이 우리에게 실제로 있었다면? 우리 모두가 절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어떤 거대한 역사들이 사실은 왜곡되고 날조된 거대한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면?

 

東夷(동이)는 예로부터 우리민족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이는 이민족이 우리를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하면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거리낌 없이 써 온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가 무슨 글자이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오랑캐 이]라고 훈독(訓讀)을 읊습니다. 그럼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오랑캐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칭하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을 또오랑캐라고 하며 비하해 온 사람들이 됩니다.

는 설문해자(說文解字)東方之人也[동방의 사람이다]’라고 되어 있으며, 자형은 (큰 대) (활 궁)의 합자로, 어디에도오랑캐의 뜻이 깃들어 있지 않습니다. 특히나 갑골문에서는 (사람 인)으로 를 통용시켜 사용하였는데,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언어에서사람이란 동물에 대비되는 개념과 아울러,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자신들을 일컫는 개념으로 쓰이는 것에 견주어 본다면, 로 지칭되는 사람들이 갑골문자를 만든 사람임은 분명합니다. 오랑캐의 훈()이 달린 것은 한나라도 훨씬 지나서 생겨난 개념이며, 이를 무분별하게 수용하게 된 것은 어떤 정치적 배경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일제(日帝)의 식민사관이 친일파의 주동에 의하여 우리민족에 심겨졌듯이, ()나라를 지극정성으로 사대(事大)하며, 위로는 국왕의 권위를 주무르며, 아래로는 백성들의 수탈에 여념이 없던 소위 조선시대 유림(儒林)에 의하여 심겨진 훈독(訓讀)이며, 친일파가 나라를 팔았다면 친명파(親明派)는 배달얼을 판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비약의 도를 넘어선 자의 정신착란(精神錯亂)으로 받아들여 질 것도 압니다만, 이 책 전체가 문자기호학의 측면에서 이를 논증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漢文이란 고대중국어[]을 기록한 문자[글자]라고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결코 근본 계통[첨가어와 고립어] 자체가 다른 언어입니다. 漢文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는 이 문어(文語)는 세상 어느 나라의 입말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입말의 소릿값과 문법을 무시한 문자체계란 바로 세계 공용어, 즉 인공언어(人工言語)의 개념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낱낱의 글자가 나타낼 수 있는 뜻의 범위와 한계는 배달말의 소릿값 조합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이 문자 언어를 중국인들이 주도적으로 사용하게 된 한나라 이후에 중국어의 입말의 영향을 받아 점진적인 변화가 발생하는데, 이는 韓文에 중국어의 소리와 문법이 가미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물론 후대로 갈수록 가미의 정도가 농후해져서는 백화문(白話文)에 이르게 됩니다. 중국어의 가미로 가장 대표되는 것은 주희(朱熹)의 집주(集註)문들로 초기 상태의 변형이라고 하겠습니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고문운동(古文運動)이란 결국 원형의 韓文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에서도 마찬가지로 원형의 韓文을 구사하는 선비의 글과 중국어에 의하여 변형된 漢文을 구사하던 유생의 글, 두 가지 종류의 문장이 있다고 하겠으며 정조대왕(正祖大王)의 문체반정(文體反正)의 핵심은 원형의 韓文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입니다.

현대적 의미[사전식 의미]의 문체반정이란 당시의 중국에서 유행한 패사소품(稗史小品)의 내용을 버리고 경서(經書)와 같은 고문(古文)형식으로 글을 써야한다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당송팔대가의 고문운동과 마찬가지로 정조대왕의 문체반정의 핵심은문법’, 즉 공용어[중국어의 입말에 의한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한족(漢族) 韓文에 자기들의 어감을 뒤섞여 漢文으로 변용한 것은 그들 나름으로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으나, 조선시대 유림들이 이를 따라 漢文으로 구사하는 것은 스스로 조상의 얼을 버리고, ()나라를 사대(事大)한 결과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국서(國書)나 열성(列聖)의 어록, 대다수 선비들의 문장들이 올올한 韓文 그대로인 것에 후손으로서 무한한 영광과 긍지를 느낍니다.

 

韓文 漢文의 개념은 이 책에서 처음 피력하거니와 그 정의가 정미(精微)한 상태에 이른 것도 아닙니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한문을 전문으로 하는 분들조차도 저의 주장에 대하여 공감은커녕 이해조차 하기 어렵겠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규명은 우리 배달민족의 역사와 인문학 전체를 올바르게 세울 수 있는 근간이 될 것입니다.

 

 

 

 

중원공정(中原工程)

상고대에 시작되었던 인문학(人文學)의 왜곡

 

韓文이 중국 땅에서 漢文으로 변형되는 것은 세월의 흐름에 따른 일반적인 변화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정책적이고 조직적으로 진행된 많은 정황들이 있습니다. 이를 이 책에서는중원공정(中原工程)’이라고 칭합니다.

현재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이름하에 발해나 고구려와 같은 중국의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던 국가들의 고대사를 자기들의 역사인양 왜곡하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는 이유가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간도 땅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 주장에 대비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혹은 중국의 패권주의적인 발상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지금의 중국이 유지되는 가장 큰 이유는최고(最古)의 역사를 가진 최고(最高)의 대제국이었다는 그네들 과거에 대한 자부심입니다. 이 자부심이 무너진다면 중국이라는 거대한, 혹은 복잡한 국가는 의외로 쉽게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는 처음부터 왜곡과 날조에 의한 것이기에 자칫 무너질 수 있는 날조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방편이 바로 동북공정이라 하겠습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진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중원공정이 먼저 있었으며, 이 중원공정이 성공하였기 때문입니다.

 

 

亡而爲有 虛而爲盈 約而爲泰, 難乎有恒矣 논어

없으면서도 있는 척하고, 허하면서도 차있는 척하며, 구차하면서도 태연한 척한다면 항심이 있다기에 어렵겠다.

 

상기 논어(論語)의 문장에 대한 풀이는 주희(朱熹)의 집주(集註)를 토대로 한 것입니다. 주희가 (없을 망) (없을 무)라고,  (맺을 약) 苟且(구차)라고 주를 달았으며, 주희 이후로는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저와 같은 풀이하고 있습니다.

없으면서 있는 척하다가 왜 비난의 원인이 되는 것일까? 적은 병력을 거느린 장수가 많은 병력의 적에 대항하기 위하여 자신의 병력이 아주 많은 것처럼 꾸며서 적을 물리쳤다면 비난이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가난하지만 올 곧은 선비가 돈 많음을 믿고 다른 사람에게 거만 떠는 무뢰배 앞에서있는 척하는 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가?   와 같은 글자라면 어떤 경우에 을 쓰고, 어떤 경우에 를 가려 써야 하는지 구분할 수 있는가? 이 왜 구차(苟且)의 뜻이 되는가?

 

의 갑골문은 사람이 깊은 구덩이 속에 들어가 있는 모양인데, 이는 배달말의숨다의 소릿값을 나타냅니다. 이로부터逃亡[내빼고 숨다]’의 뜻이며, 死亡(사망)에서는 숨지다의 뜻[소릿값]이 됩니다. 따라서 상기 문장의 숨다로 풀어야 합니다. [전장이나 국난의 어려움에서] 숨기에 급급해 놓고는 있었노라고 여김을 말하는 것입니다.

 은 배달말의조르다, 줄이다등의 소릿값을 나타냅니다. 비슷한 어기로는 (간략할 략)이 있는 에서 는 발을 길게 늘인 모양인데, 이로부터빼다, 빼앗다의 소릿값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줄이다의 뜻으로 빼다와 뜻이 통용되는 것입니다. 省略(생략 ; 덜고 빼다) 省約(생약 ; 덜고 줄이다)로도 쓸 수 있으며, 簡略(간략 ; 간단하게 빼다) 簡約(간약 ; 간단하게 줄이다)으로 써도 같은 뜻이 됩니다. 하지만 侵略(침략)의 경우에는 [줄이다]이 쓰일 수 없습니다. 이 문장에서 줄이다, 조르다에서 비슷한 소릿값인졸이다(/속을 태우다시피 초조해하다)’의 뜻입니다. 그래야만 다음에 이어지는 (편안할 태 ; 태연)과 어울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정말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주희의 주()가 그대로 사전에 등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을 한자사전에 찾아보면없을 무라고 등재되어 있으며, 을 찾아보면구차의 뜻으로도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나구차(苟且)’의 뜻은 사서삼경 전체, 아니 그 동안의 모든 문장을 통틀어 논어에 두어 번 쓰이고 말 뿐입니다. 이런 현상이 아주 특이한 것이 아니라, 거의 대다수의 글자들에 두루 나타나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한학자가 조선왕조실록의 기술 내용을 사전을 뒤적여 가며 풀이한다면 당연히 올바르게 읽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현재 조선왕조실록의 풀이는 얼마나 뒤죽박죽인가, 원형의 역사 사료가 얽혀 있으니 그에 따르는 역사 기술은 또 얼마나 난장이겠는가]

 

이는 정치적인 고의를 가진 것입니다. 특히나 주희(朱熹)가 교묘한 것은 왜곡된 주를 달면서도 자신이 직접 그와 같은 뜻으로 구사하지는 않습니다. 韓文 漢文으로 만들겠다는 정치적인 목적 하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진행된 중원공정의 일환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글자의 뜻에 혼동을 줌으로써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왜곡시켜 버린 것입니다.

 

글자의 뜻에만 혼동을 준 것이 아닙니다. 아래는 자형도 글자의 근원이 드러나는 경우에는 변경을 주고 있는데, 이런 변화는 민간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진행된 것임을 한 번 더 논증한다고 하겠습니다.

 

 

 

 舟의 전문

 

 

 朝의 전문

 

 

 前의 전문

 

 

   服의 전문 

 

(배 주)는 일반적으로배의 모양을 형상화 시킨 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오류이며, 는 일정한 묶음 단위로 틀에 말아 놓은[옷감]’의 형상입니다. 에서 거의 동일한 소릿값을 가지는[선박], [사람 몸의 복부]’등의 뜻으로 의미가 확장되어 쓰인 글자입니다. 한자의 자형 조합은 배달말에서의 동음이의어의 조합으로 보아야 합니다.

(아침 조)의 전문 자형은 (해뜰때해빛나는모양 간) 의 합자인데, 은 배달말의달아오르다에서소릿값을 나타내며, 에서소릿값을 나타냅니다. 이를 우에서 좌로 읽으면배달의 소릿값이 드러납니다.  (앞 전)의 전문 자형은걷다의 뜻을 나타내는 (그칠 지) 의 합자인데, 여기서의 는 사람 몸의이며, 걸어갈 때가 향하는 쪽으로의 뜻을 나타냅니다. (옷 복)의 전문 자형은  (병부 절)[]과 손의 모양인 (또 우)의 합자인데,  조절(調節)하여 마르다[]’의 뜻이며, 여기서의 는 옷감으로서의의 뜻입니다.

, , 의 전문 자형에 공동으로 쓰인 가 현재의 해서(楷書) 자형에 와서는 모두 (육달 월)[]이나 (달 월)로 변경되어 있는데, 이는 기존의 자형을 그대로 둘 경우 이 문자들은 배달말의 소릿값의 조합이라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고의로 바꾼 것입니다.

 

 

 

 

중원공정의 현실화

 

亢龍有悔(항룡유회)

까닥이는 용은 후회가 있다

 

항룡유회(亢龍有悔)에 대한 현재의 국어사전 상의 정의는하늘에 오른 용은 뉘우침이 있다이며,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이 더 올라갈 데가 없어 다시 내려올 수밖에 없듯이, 부귀(富貴)가 극에 이르면 몰락(沒落)할 위험(危險)이 있음을 경계(警戒)해 이르는 말이라는 식의 비유적인 관용어라고 규정짓습니다. 자의 뜻을높다라고 풀이한 의미인데, 이는 주희(朱熹) 자에 대한 풀이를高也[높은 것이다]’라고 주()를 단 것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이를 그대로 국어사전에서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자는 사람이 다리를까닥까닥하는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배달말의까닥까닥, 끄덕끄덕[껄떡껄떡]등의 소릿값을 나타낸 글자입니다. [편 참조] 이 소릿값을 빌려와 (막을 항)[꺾다], (짝 항)[깍지] 등의 뜻들이 파생된 것입니다. 따라서 亢龍有悔꺼덕거리는[까닥이다(/잘난 체하다), 거들먹거리는] 용은 후회가 있다로 자신의 지위만 믿고 전횡(專橫)한 경우에는 후회할 일이 생기니 조심하라는 의미가 됩니다.

 

 

文言曰 亢龍有悔 何謂也 子曰 貴而无位 高而无民 賢人在下位而无輔 是以動而有悔也 又曰 之爲言也 知進而不知退 知存而不知亡 知得而不知喪. 文言傳

문언에 이르고 있다. 亢龍有悔란 뭐를 이름인가? 공자는 귀하면서도 지위가 없고, 높으면서도 백성이 없다. 현인(賢人)이 아래에 있으면서도 보필함이 없다. 바로 그래서 움직이면 후회[/잘못]가 있기 마련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란 말은 나아감은 알고 물러남은 모르며, 존속은 알지만 멸망은 모르고, 얻음은 알면서 잃음은 모르는 것이다라고도 말하였다.

 

 

臣謂 人君 勢位高. 苟不知 進極必退 存必有亡 得必有喪之理, 至於滿 則志氣驕溢. 慢賢自聖 獨智馭世. 不肯與臣下 同心同德 誠意交孚 以共成治理 膏澤不下於民. 比如陽氣極而不下交 則陰氣無緣自上而交陽 豈能興雲致雨 而澤被萬物乎 此所謂龍有悔 窮之災也. 退溪集·亢龍有悔

신이 아룁니다. 인군(人君)은 세력과 지위가 높고 깍듯합니다. ()에 나아갊에는 반드시 물러남이 있고, ()에는 반드시 망()이 있으며, ()에는 반드시 실()의 이치가 있음을 진실로 모른다면 까딱까딱(/물이 가득한 상태) 가득함에 이르러 곧 지기(志氣)가 교만하게 넘쳐 방자한 똘똘함으로 스스로 성인(聖人)이라고 여겨, 혼자만의 지식으로 세상을 부리게 됩니다.

신하와 더불어 동심동덕(同心同德)과 진실한 뜻으로 서로 믿고 도와줌으로써 함께 치리(治理)를 이룩하지 않아, 고택(膏澤)이 백성에게 내려가지 않게 됩니다. 비유하자면 양기(陽氣) 가닥가닥(/물기나 풀기가 있는 물체의 거죽이 거의 말라서 빳빳한 상태) 극에 달해 아래와 교우하지 않게 되어, 곧 음기(陰氣)가 올라와 양기와 교류할 연고가 없으니, 어찌 구름이 일어 비로 치달아 혜택이 만물에 끼치게 되겠습니까? 이것이 소위 까닥이는(/분수없이 잘난 체하며 경망하게 행동하다) 용은 후회가 있다는 것이며, 궁극의 재앙인 것입니다.

 

 

자에 대한 공자(孔子)의 언론과 퇴계선생(/1501~1570)의 언론을 나란히 비견해 보겠습니다. 공자는 [까닥이다/꺼덕거리다] 자에 대한 풀이를 철학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배달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지만 구사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논어나 기타 공자가어 전반에 걸쳐 드러납니다.  자를 마치 외국어의 어려운 단어를 설명하듯 풀고 있습니다. 까닥거리다, 껄떡거리다라는 그저 그런 배달말의 의태어 하나에 무슨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는 듯이 풀이합니다. 영화부시맨에서, 비행기에서 던져진 빈 콜라병을 주운 아프리카 부시족이 무슨 영험한 기물인 듯 다루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고대 한족(漢族)의 학문이라는 것 자체가 이렇게 비롯되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닙니다.

하지만 퇴계선생의 경우는 자가 배달말의까닥까닥, 끄덕끄덕의 소릿값을 나타낸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으며, 더욱 비약적인표현으로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는 퇴계선생과 같은 방식의 자유로운 언어 구사는 불가능합니다. 이는 중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공자 유()의 한계입니다.

 

 상기문언전퇴계집의 두 문장은 모두 세계 공용어,  韓文의 범주에 들며 퇴계집의 문장이 더욱 태초의 방식이라고 하겠습니다.

 

 

퇴계선생은조선 최고의 성리학자라고 불려 집니다. 여기서의 성리학(性理學)이란 이전의 학문을 주희(朱熹)가 집대성한 주자학(朱子學)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朝鮮) 자체가 유학(儒學)과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는 언어학에 있어서의 가공무역(加工貿易)으로 보아야 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진 배달말의 의성의태어 하나에 한족 특유의 관조와 사색이 덧붙여지고, 그기에 수 천 년의 세월이 깃들면서 독특한 철학체계가 구축되는데, [부시족은 드디어 빈 콜라병을 소재로 위대한 예술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亢龍有悔에 대한 공자의 언변과 같은] 이 체계를 조선에서 역수입하고, 유생(儒生) 사회라고도 할 수 있는 조선에서는 사대주의(事大主義)의 발현으로 자신들 정신의 조국이라고 여기던 명나라를 더욱 잘 섬기고자[혹은 기득권층의 집단이기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그 철학의 근원지로 공자와 주자를 삼고 신봉하게 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예 漢文을 구사하는 유생들도 생겨난 것입니다.[친일파가 일제에 자기의 충성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일어에 능통해지는 것처럼] 비록 퇴계선생이 주희(朱熹)를 공부하기는 했지만, 이는 현실을 위한 피치 못할 당시의 사정이며, 그 학문의 근원은 배달말에서 배달말로 이어지는 태초의 방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비단 亢龍有悔 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성어(成語)들의 의미가 중원공정에 의하여 왜곡되고 날조되어 있는지, 우리 스스로가 중국의 편을 들고 있는지를 아신다면 배달사람의 후손으로서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왜곡과 날조가 겨우 단어들에 그치지 않고, 경서(經書)는 물론이고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역사서의 풀이에도 그대로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쓰일 수) (비 우) (이을 이)의 합자입니다. ‘잇다라는 전혀 무관한 글자의 조합에서쓰이다의 뜻이 나타나는 이유는 두 글자가 뜻글자가 아닌 배달말의 소리글자이기 때문입니다. 소릿값에서비다(/, 재산 따위가 없어지다)’의 뜻을 따온 것이며, 그 비워진 것을잇는다[]’는 것에서쓰이다의 뜻이 도출됩니다. (나약할 나)에서 비에 이어지다[늘어나다]’에서눅다(/분위기나 기세 따위가 부드러워지다)’의 뜻으로 쓰여, ‘누진 마음에서무눅다의 뜻이며, (어린아이 유)에서는 눅다눟다(/[옛말]낳다)’로 쓰여, ‘갓난[낳은눟은]아이의 뜻이 도출됩니다. 을 덧붙인 (선비 유)누진 사람이라는 것에서선비의 뜻이 나타납니다.

이런 문자의 조합을 고안한 사람은 배달사람일 수밖에 없으며, 또한 유학(儒學)이란 개념도 배달말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儒學은 배달말에서는 더 이상 이렇다 설명이 필요하지 않지만, 중국어에서라면 수 없는 수식어구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이 역시 예술작품으로 승화된빈 콜라병입니다.

 

亢龍높은 용으로 푸는 것과까닥거리는 으로 푸는 것은 결코 번역자의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게 역사서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습니까? 진실과 거짓이 틀어지기도 하며, 충신과 역적이 뒤바뀌기도 합니다. 가정적인 예시가 아닙니다. 중국어에 의탁하여 우리 스스로가 짓밟고 있는 배달얼과 말씀, 그리고 나달[역사] 인식의 현실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한문 문장풀이]은 이 책의 본문에 기술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일반인을 위하여 간략화 시킨 내용만 수록되어 있으며, 전체 원문은 저의 다음카페에 게재해 놓겠습니다.

 

 

 

 

한자(韓字)의 독()

 

한자는 매 글자마다 훈( ; )과 독( ; 소리)이 있는데, 이것이 한 글자 당 하나의 훈과 독이 있는 것이 아니라, 훈의 경우에는 작게는 서너 가지에서 많게는 열 가지를 넘어서기도 하며, 독 역시 두세 가지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한문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장 난해한 부분입니다.

이 중에서 훈()의 경우는 한자가 처음부터 뜻글자가 아닌 배달말의 소리를 조합시킨 소리글자로 만들어 졌으며, 이를 중국인들이 풀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의역(意譯)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고 사전에 등재하면서 발생한 혼란입니다. 예로, (애벌레 촉)은 배달말의흐물흐물의 소릿값을 나타내는 글자인데, 이로부터 (홀로 독)[흐물홀로], (촛불 촉)[흐물흐물한 불촛불], (흐릴 탈)[흐물흐물흐리다] 등의 글자들이 파생됩니다. 이는 한 글자가 다른 의미요소의 글자들과 조합을 이루는 과정에서 의미의 확장이며. 흐물흐물이란 소릿값이 문장에 쓰여서는 중국어로 재번역 되는 과정에서흔들리다, 흐리다, 힘들어하다, 녹아내리다, 지치다등으로 얼마든지 의역이 될 수 있으며, 이런 다양한 의역된 뜻이 마치 본연의 뜻인 양[중국어를 한국어로 재번역하여] 자전에 그대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의 경우는 몽고족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명()나라 때를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는 몽고족의 제국인 원()을 물리친 명나라에 들어서야 비로소 중국인들은 자기들의 정체성에 대한 각성이 이루어지고, 입말과는 전혀 다른 글자의 음들을 억지로라도 자기들의 입말에 맞춘 것이며, 결국 명나라라는 강력한 힘에 의하여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주변국들에게까지 독법의 변화는 동반됩니다. 의 독() []은 배달말의촉촉하다에 따른 것이지만, 현대중국어에서는 [Shǔ]로 본음과는 전혀 무관하게 발화됩니다.

한자에는 종성 [] 소릿값이 존재합니다. 이는 중국과 일본에는 없으며, 우리나라에만 있는 음가입니다. 중국어나 일본어에서는 고대에는 종성 [] 소릿값이 존재하다가 그네들 음운 현상에 의하여 점점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없던 소릿값이라 할 것입니다.

()하다, ()하다, ()하다등의 경우에는 한 글자만으로도 한국어에서 뜻을 나타낼 수가 있지만, , 와 같은 경우에는 한 글자만으로는 독자적인 뜻을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어떤 경우에는아주 이른 시기에 받아들여진 한자의 경우에는 순우리말화 된 것이다라는 식으로 정의내리기도 합니다. 과연 그런 것일까?   같은 가장 기초적인 말이 더 후대에 전해진 것일까?

 

한자   한국어   중국어

莫       []     []

或       []     [huò]

各       []      []

得       []      []

 

, , , 에는 종성 []소릿값이 존재하며, 한국어 상에서의 독법과 중국어 상에서의 독법을 비교해 보면 음근이라고 할 수 있는 [m, hu, g, d]는 중국어에서 유지되고 있지만 종성 []음은 사라져 버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 [huò], [], []와 같은 중국어 음이 한국어로 건너오면서 [], [], [], []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맥도날드의 경우는 중국어에서 麥當勞[Màidāngláo ; 마이당라오]로 발음되는데, 영어의 Mc[]이 중국어로 들어가면서 종성 [] 음가가 사라지고 [마이]로 발화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현상은 종성음가가 없는 중국어에서 []에 있는 종성음가를 살리기 위하여 [마그]와 같은 식으로 발화한다면 이는 하나의 구()나 절()로 받아들여지기에 종성을 생략하고 그네들 나름의 성조(聲調)로 어기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 , , ]이라는 배달말 고유의 소릿값이 중국어로 들어가면서 종성이 사라진 것입니다. 지금도 한국어를 모르는 중국인에게 한국어의 [, , , ]을 따라하게 하면, [], [huò], [], []로 따라합니다. , 와 같은 세상 어떤 언어에도 존재하는 기초적인 낱말의 경우는 원음을 아예 무시하고 자기들 고유의 어감에 따라 소릿값이 전혀 달라진 것이며, 자기들 말에는 존재하지 않는 낱말의 경우에는 자기들 편하게 변화시킨 것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책은 갑골문과 금문, 그리고 시황제(始皇帝)의 전문 자형이 배달말의 소릿값을 조합시켜 만들 것임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3 5백년도 더 전인 은나라 때에 이미 이러한 방식의 공용어가 쓰이고 있었는데, 한 가지 빠트리지 말아야 할 것은문자도 없는 상태에서 서로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의 뜻을 소통시키기 위한 공용어[문자(文字), 문법(文法), 문음(文音)]의 제작이 가능하겠는가의 문제입니다. 절대 불가능하며, 이 갑골문자의 존재 자체가 그 이전에 배달말의 문자, 그 중에서도 소리문자가 존재 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창힐(倉頡) 브리태니커

창힐(蒼頡)이라고도 쓰며, 황힐(皇頡힐황(頡皇)이라고도 한다. 일설에는 황제(黃帝)의 사관(史官) 또는 고대의 제왕이라고도 한다. 그는 머리에 눈이 4개 있고 신명(神明)과 통하며, 위로는 괴성(魁星북두칠성의 方形을 이룬 네 별)의 둥글고 굽은 형세를 관찰하고 아래로는 거북의 등껍데기 모양과 새 발자국의 형상을 살펴, 아름다운 것들을 널리 모아 글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천지·귀신이 그것을 보고 감동하여 하늘에서는 곡식을 내리고 귀신은 밤에 곡을 했다고 한다. 문자가 세상에 전해지자 '이사(李斯)는 창힐이 쓴 28를 보고 단지 8자만을 알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상기 내용에 창힐이 처음으로 28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시황제(始皇帝)의 승상이며,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주창하고 전문(篆文) 자형을 직접 개발한 이사(李斯)는 그 중 8자만을 알았다고 합니다. 창힐이 만든 28자는 한자의 기원인가?  28자로부터 현재 8만자에 이르는 글자들이 파생된 것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한자라는 독특한 문자의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천자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더 심도 깊은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4천자 이상은 알아야 가능합니다.[시황제의 전문 자형이 5천자 미만이며, 사서삼경 전체에 쓰인 한자의 수도 이와 비슷합니다] 또 한자를 28자 만들 수 있었다면 3천자, 4천자를 만들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생존 시기는 물론이고 그 존재 자체도 불분명한 전설상의 사람에게 28라는 명확한 숫자가 붙여지고 그러면서도 무슨 글자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28와 글자의 수가 같은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어쩌면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는 태고의 배달 소리글자는 아닐까 합니다.

 

배달말의 소릿값을 조합하여, 매 글자를 표준화 시킨 뜻[공용어]으로 배포하였는데, 이 소릿값을 압축하여 표준음[단음절]도 함께 배포한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의 독()은 원음이 그대로 지켜지는 경우도 있으며, 중국에서 새롭게 부여한[자기들 음감에 맞춘] 음에 의하여 변형된 경우도 있습니다.

 

 

 

 

我東方之文

 

 

我東方之文 非漢唐之文. 亦非宋元之文. 而乃我國之文也. 宜與歷代之文 幷行於天地間. (中略), 吾東方之文 始於三國 盛於高麗 極於聖朝. 四佳集

우리 동방의 글은 한나라와 당나라의 글이 아니요. 또한 송나라와 원나라의 글도 아니다. 그러한 우리의 글이야. 마땅히 역대의 글로 천지간을 아울러 행할 지다. (중략), 우리 동방의 글은 삼국에서 시작하여 고려에서 성해졌으며, 성스러운 배달에서 극하다.

 

조선 초기 학자 서거정(徐居正 ; 1420~1488)의 글입니다. 서거정은 무슨문자를 가지고 저와 같은 문장을 쓴 것일까? 세종대왕의 신하로 훈민정음 창제에 지대한 공헌을 한 서거정이지만 결코훈민정음을 가지고 저와 같은 문장을 쓴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韓文 문장자체를 가지고 논한 것입니다. 韓文 문장이 배달사람의 입말을 구체적으로 담아내고 있지는 않지만, 매 글자의 조합은 배달말의 소릿값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저와 같은 내용을 피력한 것은 중국어에 의한 변질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日翌 金眞息

 

 

'漢文' 카테고리의 다른 글

澹泊明志 寧靜致遠  (0) 2021.07.05
伯夷  (0) 2021.04.27
陶隱文集序  (0) 2021.04.15
幽居  (0) 2021.03.06
梅月堂  (0) 2021.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