幽居(유거) 고요하고 그윽한 삶
離群誰與共吟壇(이군수여공음단) 무리를 떠났으니 누구와 시 읊는 곳을 함께 할까?
巖鳥溪魚慣我顔(암조계어관아안) 바위 위 새와 계곡의 물고기는 내 얼굴에 익숙하네.
欲識箇中奇絶處(욕식개중기절처) 개중에 가장 기이한 곳을 알고 싶은지
子規聲裏月窺山(자규성이월규산) 두견새 소리 속에 달이 산을 엿보네.
* 幽居(유거) : 속세를 떠나 깊숙하고 고요한 곳에 묻혀 외따로 삶.
①유거하다 ②으슥한 거처 ③은둔하다 ④은거(隱居)하다
* 離群(이군) : ①집단에서 떨어지다 ②집단을 이탈하다
* 與共(여공) : 함께 나누거나 누림. ①같이 있다 ②함께 하다
* 奇絶(기절) : 비할 데 없이 기이(奇異)함 ①기절하다 ②극히 기이하다

[글씨의 원문과 내용]
鶴城寄友人(학성기우인) 학성에서 벗에게 부친다.
山水情懷老更新(산수정회로경신) 산수에 품은 뜻이 늙어서 다시 새로우니
如何長作未歸人(여하장작미귀인) 오래도록 일하며 돌아가지 않는 사람은 어째서인가?
碧桃花下靑蓮舍(벽도화하청연사) 푸른 복사꽃 아래가 이태백의 집이니
瓊島瑤臺入夢頻(경도요대입몽빈) 옥으로 된 섬과 누대가 꿈에서 잦네.
蓬萊書(봉래서) 봉래가 쓰다.
※ 출전 : 봉래시집(蓬萊詩集) 제 1권
* 鶴城(학성) : 울산(蔚山)의 옛 지명
* 如何(여하) : .어떠한가. 어떠하냐. 2.어떻게. 어떤. 어쩌면. 어찌하면. 3.왜. 어째서.
* 靑蓮(청련) : 푸른 색깔의 연꽃. 이백(李白)의 호(號)
* 瓊島(경도) : 옥 같은 섬.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 한탄강 상류에 양사언이 썼다는 글씨 ‘瓊島’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김생(金生, 711~791) by Son han seok
출생 711(성덕왕 10) 사망 791(원성왕 7) 국적 통일신라, 한국 |
통일신라 시대의 서예가.
해동서성으로 불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서도에 정진해 예서·행서·초서에 따를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안동 문필산, 경주 경일봉 석굴 같은 곳에서 글씨를 힘써 공부하고, 충주 북진애에 있는 절에서 중이 되어 두타행을 닦았다.
고려 사신 홍관(洪灌)이 송(宋)의 변경에 체류할 때 김생의 글씨를 가져다 보이자 송의 한림대조 양구와 이혁(李革)이 왕희지(王羲之)에 비길 만한 천하의 명필이라고 격찬했다. 그뒤부터 중국 사신들은 김생의 필적을 매우 귀하게 여겨 얻어갔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이나 〈미수기언 眉叟記言〉에 문필산·김생굴(金生窟)·김생사 등 그와 관련된 풍수유적이 전한다.
그의 유일한 서첩으로 〈전유암산가서 田遊巖山家序〉가 있으며, 〈해동명적 海東名蹟〉·〈대동서법 大東書法〉에도 몇 점의 글씨가 실려 있다. 이밖에도 〈백률사석당기 栢栗寺石幢記〉·〈백월서운탑비 白月栖雲塔碑〉가 있다.

김생(金生) 서첩

김생(金生, 711년~791년)
711년(성덕왕 10년)∼791년(원성왕 7년.) 통일신라시대의 서예가. 자는 지서(知瑞). 별명 구(玖).
『삼국사기』권48 열전 제8 김생조에 의하면, “김생은 부모가 한미(寒微: 사람의 형편이
구차하고 신분이 변변하지 못함)하여 가계를 알 수 없다.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 나이 팔십이 넘도록 글씨에 몰두하여 예서·행서·초서가 모두
입신(入神)의 경지였다. 숙종 때 송나라에 사신으로 간 홍관(洪灌)이 한림대조(翰林待詔)
양구(楊球)와 이혁(李革)에게 김생의 행서와 초서 한 폭을 내보이자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라고
하며 놀라워하였다.”고 한다.
그의 행적 또한 알 수 없으나, 『동국여지승람』충주목(忠州牧) 불우조(佛宇條) 김생사항
(金生寺項)에 “김생이 두타행(頭陀行 : 번뇌를 끊고 의식주에 대한 탐심이 없이 깨끗하게
불법을 닦는 일)을 닦으며 이곳에 머물렀기에 김생사라 이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김생의 글씨로 전해지는 작품들이 모두 사찰 또는 불교와 관련된 점으로 보아 ‘호불불취
(好佛不娶: 부처를 좋아해 장가를 들지 않음)’하였다는 그의 생을 짐작할 뿐이다.
그는 특히 고려시대 문인들에 의하여 해동제일(海東第一)의 서예가로 평가받아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는 그를 신품제일(神品第一)로
평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이미 그의 진적(眞蹟: 실제의 유적)이 귀해져 이광사(李匡師)의 『원교서결
圓嶠書訣』에서 그의 진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고 할 정도였다.
김생의 진면목을 살필 수 있는 필적으로 현재 경복궁에 있는「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
(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가 있다.
이 비의 비문 글씨는 고려 광종 5년(954)에 승려 단목(端目)이 김생의 행서를 집자(集字)한
것으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유행한 왕희지·구양순류의 단정하고 미려한 글씨와 달리
활동적인 운필(運筆: 붓 놀림)로 서가(書家)의 개성을 잘 표출시키고 있다.
또한, 짜임새나 획의 처리에 변화를 일으킴으로써 틀에 박힌 글씨에서 벗어나 운치를 살리고
있다. 그의 유일한 서첩으로 『전유암산가서(田遊巖山家序)』가 있으며, 『해동명적(海東名蹟)』
·『대동서법(大東書法)』에 몇 점이 실려 있다.
특히, 「여산폭포시(廬山瀑布詩)」는 자유분방하면서 힘이 넘치는 필적이다.
이 밖에 「창림사비(昌林寺碑)」가 있는데 현재 원비는 물론 탁본조차 전하지 않는다.
단지 원나라의 조맹부(趙孟頫)가 『동서당집고첩발(東書堂集古帖跋)』에서 “창림사비는
신라김생의 글씨로 자획에 전형(典型)이 깊어 당인(唐人)의 명각(明刻: 뛰어난 조각가)이라도
이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품평이 전한다.
[글씨의 원문과 내용]
我等今見佛(아등금견불) 우리들이 지금 부처를 보니
普及十方界(보급시방계) 시방계에 골고루 미치네.
昔發菩提顛(석발보제전) 옛적에 드러낸 지혜에 엎드리니
充偏難思議(충편난사의) 완전히 치우치고 어려운 생각을 헤아리네.
處此天宮殿(처차천궁전) 이 천궁전에 머무르니
是故佛威力(시고불위력) 이런 까닭이 부처의 강한 힘이네.
金生字之瑞 김생의 자는 서(瑞)로써
元聖王時人官侍郞 원성왕 때 사람으로 벼슬이 시랑이었다.
* 我等(아등) : 우리 여러 사람. 우리들
* 普及(보급) : 널리 펴서 골고루 미치게 함. 널리 퍼뜨려서 알리거나 실행(實行)되게 함
1.보급되다. 확산되다. 2.널리 확산시키다. 보편화시키다. 대중화시키다.
* 菩提(보리) : 1.보리. 정각(正覺). 2.보리수. 도(道)·지(智)·각(覺)을 뜻하는 동시에 불교 최고의 이상(理想)인 불타정각(佛陀正覺)의 지혜. 보리를 「지」라고 할 때에는, 깨달음을 통해 나타나는 정신적
빛으로서의 지혜를 가리킨다.
* 思議(사의) : 생각하여 헤아림.
* 是故(시고) : 그러므르. 이런 까닭으로. …한 연고로.
* 威力(위력) : ①사람을 복종시키는 강(强)한 강제력(强制力).
②위풍(威風) 있는 강대(强大)한 권세(權勢)
* 侍郞(시랑) : 신라와 고려의 관직.
신라에서는 747년(경덕왕 6) 당(唐)나라의 제도를 모방하여 집사부(執事部)의
전대등(典大等), 병부(兵部)의 대감(大監), 창부(倉部)의 경(卿)을 이 이름으로 고쳤다.
이들은 모두 각 부의 차관이며 관계로는 11관위(官位)인 나마(奈麻)로부터 6관위인 아찬(阿飡)
까지 5두품(五頭品)과 6두품의 신분층이 맡을 수 있는 벼슬이었다.
고려 초기에는 광평성(廣評省) 시중(侍中) 다음의 관직을 말하였다. 또 정4품 벼슬로서
상서(尙書)이부·상서호부·상서병부·상서예부·상서형부·상서공부 등 6부와 6조(六曹)의 상서 다음
가는 차관 벼슬을 말하기도 하였다.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1521~1575
출처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1521~1575 by Son han seok

황기로 초서 이군옥시
조선전기 「초서가행」을 쓴 서예가.
본관은 덕산(德山), 자는 태수(鮐叟), 호는 고산(孤山) 또는 매학정(梅鶴亭). ‘초성(草聖)’이라 불릴 정도로 초서에 능하였던 조선 중기의 서예가이다.
황기로의 조부는 경주부윤(慶州府尹)을 지낸 황필(黃㻶), 부친은 빙고 별좌(氷庫別坐)를 지낸 황이옥(黃李沃), 모친은 초계 정씨(草溪鄭氏)로 현감을 지낸 정내필(鄭來弼)의 딸이다. 황기로는 청송 심씨 심흥원(沈興源)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일찍 작고한 듯 슬하에 자식이 없었고, 후취로 문화 유씨 유혼(柳混)의 딸을 맞아 1녀를 두었다. 그의 딸은 율곡 이이(李珥)의 아우이자 명서가인 옥산(玉山) 이우(李瑀)와 혼인하였다. 황기로의 유묵은 딸과 혼인 관계를 맺은 덕수 이씨(德水李氏) 옥산공파 종손댁에 전해지다가 2007년에 강릉시 오죽헌·시립박물관에 일괄 기증되었다.
황기로의 몰년을 알려 주는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그가 남명 조식(曺植) 문하의 동문 박제현(朴齊賢)을 위해 1575년에 제문을 써 주었고, 권호문(權好文)이 1579년에 이우의 글씨를 보고 고인이 된 황기로의 필적과 닮았다고 언급한 기록을 종합해 볼 때, 그의 몰년은 1575년에서 1579년 사이로 추정된다.
황기로는 1534년(중종 29) 14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부친 황이옥이 남곤(南袞)·심정(沈貞)의 사주를 받아 신진 사림의 거두 조광조(趙光祖)를 처단할 것을 주장하다 사판(士版)에서 삭제된 일로 인해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는 조부 황필의 유지를 받들어 고향 선산(善山)에 위치한 고산(孤山) 언덕에 매학정(梅鶴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글씨와 술로 일생을 보냈다. ‘고산’과 ‘매학정’이라는 아호는 중국 서호(西湖) 고산(孤山)에 매화를 심고 학을 길러 ‘매처학자(梅妻鶴子)’로 불렸던 북송(北宋)의 은둔 시인 임포(林逋)의 처사적 삶을 동경한 데서 온 것이다.
황기로는 ‘초성’이라 불릴 정도로 초서에 능하였고, 특히 술과 관련된 일화가 많아 취흥을 빌려 글씨를 썼다는 기록이 종종 전해진다. 이는 당(唐)의 장욱(張旭)과 회소(懷素) 등 광초(狂草)로 불린 초서 명가들의 자유롭고 방일(放逸)한 태도와 일치하는 것으로, 실제 그의 글씨에 장욱·회소와 명대의 초서 명가 장필(張弼)의 서풍이 적극 표현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들 간의 유사성과 영향 관계를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현전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회소의 글씨를 찬미한 이백(李白) 시를 1549년에 쓴 「초서가행(草書歌行)」이 석각본으로 간행되어 여러 곳에 전해지고 있고, 필적을 새긴 원석도 강릉시 오죽헌·시립박물관에 기증되어 있다. 이 밖에 『동국명필(東國名筆)』·『대동서법(大東書法)』 등의 법첩에도 그의 필적이 실려 있다. 그의 초서풍은 사위 이우를 포함하여 이산해(李山海), 이지정(李志定) 등에게 전해지며 조선 중기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세속을 멀리하며 유유자적 살다 간 처사로서의 삶과 함께 당대 및 후대인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황기로(黃耆老, 1521~?)
1521(중종 16)∼?. 조선시대의 서예가.
본관은 덕산(德山). 자는 태수(鮐叟), 호는 고산(孤山)·매학정(梅鶴亭).
1521년(중종 16)에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대망리에서 태어났다.
1534년(중종 29) 진사시에 합격하고 여러 번 벼슬에 천거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학문과
서도에만 정진하여 서예의 대가가 되었으며 특히 초서에 능했다.
모재 김안국과 같이 명나라에 갔을 때 명나라 선비들이 그의 필재(筆才)를 알고
‘해동장옹(海東張翁)’이라 불렀다 하는데, 이는 조선의 장욱(張旭)이란 뜻으로 장욱은 당나라
때 유일한 초성(草聖)으로 칭호를 받은 사람이다.
또한 황기로를 ‘왕희지 다음으로 첫째(王羲之後一人者也)’라 했으며, 글 한 폭씩 얻기를
원하였다 한다.
만년에 낙동강의 서쪽 보천산(寶泉山) 위에 정자를 짓고 고산정(孤山亭) 또는 매학정이라
이름을 지어 그곳에서 필묵(筆墨)과 독서를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초서를 잘 써서 ‘초성(草聖)’으로 불렸다.
『근묵(槿墨)』 등에 진적이 전하며,『동국명필(東國名筆)』·『대동서법(大東書法)』 등에
필적이 모각되어 있다.
이밖에 1549년 이백(이백)의 「초서가행」을 쓴 초서필적이 석각(석각)되어 전하는데, 당나라
회소(懷素)의 『자서첩(自敍帖)』중 광초(狂草)를 방불한다.
금석으로 충주의 이번신도비(李蕃神道碑, 1555)가 있다.
조선시대 서예사에서 초서로는 김구(金絿)·양사언(楊士彦)과 함께 제1인자라는 평을
받아왔으며, 후대에 크게 영향을 미쳐 비슷한 풍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아우인 영로(榮老)도 초서를 잘 썼다고 한다.
[글씨의 원문과 내용]

登蒲澗寺後二巖 등포 골짜기 사찰 뒤쪽 두 바위
李群玉 이군옥
五仙騎五羊(오선기오양) 다섯 신선이 다섯 마리의 양을 타고
何代降玆鄕(하대강자향) 어느 시대에 이 마을에 내려왔던가?
澗有堯時韭(간유요시구) 산골짝에는 요임금 시대 부추가 있고
山餘禹日糧(산여우일량) 산에는 우임금 때 양식이 남아있네.
樓臺籠海色(누대롱해색) 누대는 바다 빛으로 싸였는데
草樹發天香(초수발천향) 풀과 나무는 자연의 향기를 뿜네.
浩笑烟波裏(호소연파리) 크게 웃노니 안개와 물결 속에서
浮溟興甚長(부명흥심장) 바다에 떠있는 융기가 얼마나 오래가겠나?
* 五仙(오선) : 《환우기(寰宇記)》에서 ‘고고(高固)는 전국 시대 때 월(越) 나라 사람으로(초나라에서 벼슬함)
초(楚) 나라 상신(相臣)으로 있을 때, 다섯 신선이 다섯 색깔의 양을 타고 와서 한 줄기에
여섯 이삭이 달린 수수를 고을 사람들에게 주었는데, 이후 그 고을을 오양성(五羊城)이라
했다.’고 한다.
* 天香(천향) : 1.방향. 꽃다운 향기. 2.모란꽃의 향기. 3.미녀.
* 烟波(연파) : ① 연파 ② 안개 따위가 자욱한 수면
글씨의 원문과 내용]

野寺尋花春已遲(야사심화춘이지) 시골 절에서 꽃을 찾으니 봄이 이미 늦어버려
背巖唯有兩三枝(배암유유량삼지) 바위 뒤에 오직 두 세 가지만 있네.
明朝携酒猶堪賞(명조휴주유감상) 내일 아침엔 술을 가져가야 가히 볼만할 것이니
為報東風且莫吹(위보동풍차막취) 동풍이 또 불지 말라고 일러 두게.
* 野寺(야사) : 들판에 있는 절, 시골에 있는 절
* 明朝(명조) : ①내일 ②가까운 장래 ③앞날
[출전] : 중국 당대(唐代) 이섭(李涉)의 시 「春晚遊鶴林寺寄使府諸公(늦봄에 학림사에서
노닐며 부제공에게 부침)」
[원시의 원문과 내용]
野寺尋花春已遲(야사심화춘이지) 시골 절에서 꽃을 찾으니 봄이 이미 늦어버려
背巖唯有兩三枝(배암유유량삼지) 바위 뒤에 오직 두 세가지만 있네.
明朝攜酒猶堪賞(명조휴주유감상) 내일 아침엔 술을 가져가야 가히 볼만할 것이니
為報春風且莫吹(위보춘풍차막취) 봄바람이 또 불지 말기를 일러두게.
길재(吉再, 1353 ~ 1419)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 1387년 성균학정(成均學正)이 되었다가, 1388년에
순유박사(諄諭博士)를 거쳐 성균박사(成均博士)를 지냈다.
조선이 건국된 뒤 1400년(정종 2)에 이방원이 태상박사(太常博士)에 임명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을 말하며 거절하였다.
본관 해평(海平). 자 재보(再父). 호 야은(冶隱) ·금오산인(金烏山人). 시호 충절(忠節).
금주지사 (錦州知事) 원진(元璡)의 아들. 구미 출생.
1363년 냉산(冷山) 도리사(桃李寺)에서 처음 글을 배웠으며, 1370년 박분(朴賁)에게 《논어》
《맹자》를 배우면서 성리학을 접하였다.
관료로 있던 아버지를 만나러 개경에 갔다가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권근(權近) 등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1374년 생원시(生員試)에, 1383년(우왕 9) 사마감시(司馬監試)에 합격하고, 그해 중랑장
신면(申勉)의 딸과 결혼하였다.
1386년 진사시에 합격, 청주목(淸州牧) 사록(司錄)에 임명되나 부임하지 않았고, 다음해
성균학정(成均學正)이 되었다가, 1388년에 순유박사(諄諭博士)를 거쳐 성균박사(成均博士)로
승진하였다.
1389년(창왕 1) 문하주서(門下注書)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고려의 쇠망을 짐작하여 늙은
어머니에 대한 봉양을 구실로 사직하였으며, 고향으로 가는 길에 장단에 있던 이색(李穡)을
만나기도 하였다.
1390년 계림부(鷄林府)의 교수가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우왕의 죽음을 듣고
마음으로 3년상을 행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뒤 1400년(정종 2)에 이방원(李芳遠)이 태상박사(太常博士)에 임명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을 말하며 거절하였다.
1402년(태종 2)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불교식 장례법을 따르지 않고 성리학적 가례(家禮)를
따랐다. 세종이 즉위한 뒤 길재의 절의를 기리는 뜻에 그 자손을 서용하려 하자, 자신이
고려에 충성한 것처럼 자손들은 조선에 충성해야 할 것이라며 자손들의 관직 진출을
인정해주었다.
어머니에 대한 효도가 지극하며 세상의 영달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을 연구하였기 때문에
그를 본받고 가르침을 얻으려는 학자가 줄을 이었으며, 김숙자(金叔滋)를 비롯하여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등이 학맥을 이었다.
청풍서원(淸風書院)에 제향되었다.
문집에 《야은집》 《야은속집(冶隱續集)》, 언행록인 《야은언행습유록(冶隱言行拾遺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