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디우스의 매듭
_ 쾌도난마(快刀亂麻)
알렉산더 대왕이
프리기아를 점령하였을 때 테르미소스 성에 있는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매듭을
매우 복잡하게 정교하게 얽히어 있어
풀기가 무척 힘들었다.
알렉산더는
매듭을 풀려고 시도했으나 도무지 풀리지 않자,
칼로 그 매듭을 끊어 버렸다.
이 '고르디우스의 매듭'
고사는 복잡하게 얽힌 어려운 문제를 풀 때 통상의 관념을 버리고
획기적으로 과감한 해결책을 도모하라는 가르침을 준다.
Alexander cutting the Gordian Knot
_ Donato Creti (Cremona 1671-1749 Bolog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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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프리기아
왕국에는 왕이 없었는데, "테르미소스 성에 마차를 타고 오는
자가 왕이 될 것이다"라는 테르미소스 신전의 신탁이 있었다.
그러던 중
시골 농부이던 고르디우스와 그의 아들 미다스가
마차를 타고 테르미소스 성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그가 신탁에서 말해진 왕이라고 여겨 고르디우스를
프리기아의 왕으로 삼았다.
고르디우스에 이어
프리기아의 왕이 된 미다스는 아버지와 함께 타고온
마차를 프리기아의 신전 기둥에 묶어두었다.
이 때 마차를 묶은
줄을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매듭으로 엮었는대, 이를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이라 불렀다.
이를 두고
신전에서는 '이 매듭을 푸는 자는 아시아의
왕이 된다'라는 신탁을 내렸다고 한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라버린 알렉산더는 신탁의 말과 같이 인더스강까지
진출하여 아시아를 정벌하고 아시아의 대왕이 되었다.
다만 그 사후에
그가 이룬 제국은 많은 나라로
분열되었다.
그것은
그가 매듭을 정상적으로 풀지 않고 칼로
끊어버린 것 탓이라고 한다.
그래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복잡한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라는 것과 반대되는
가르침으로 인용되기도 한다.
너무 즉 단순하고
쉬운 해결책을 찾으면, 사후에 더 복잡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순리에 따라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야 한다.
알렉산더가 이룬
거대한 제국은, 그의 사후에 적절한 후계
절차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장군(디아도코이)들 간의
극심한 내분으로 산산조각이 나게 된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ALEXANDER CUTTING THE GORDIAN KNOT
_ Fedele Fischetti(Italian 1734 - 1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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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마(快刀亂麻)
'고르디우스의
매듭'의 고사는 '쾌도난마(快刀亂麻)'와
그 의미가 같다.
쾌도난마(快刀亂麻)의
고사는 중국 남북조시대에 북제(北齊)를 세운 문선제(文宣帝)
고양(高洋, 529-559)의 고사(故事)에서 유래하였다.
동위(東魏)의
효정제(孝靜帝) 때 승상으로 있던
고환(高歡)은,
여러 아들들의
능력을 시험하려고 어지럽게 뒤엉킨 실타래를 나누어
주고, 그것을 잘 추스려 보라고 하였다.
다들
실을 한 가닥씩 풀어내며 추스리느라
분주하였는데,
둘째 아들인 고양(高洋)은
홀로 칼을 뽑아 단번에 실타래를 잘라 버리며
말했다(帝獨抽刀斬之).
"어지러운 것은 베어 버려야 한다"
亂者須斬(난자수참)
_ 북제서(北齊書) 문선제기(文宣帝紀)
Alexander cuts the Gordian Knot
_ Jean-Simon Berthélemy (1743–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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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얽힌 것을 주먹으로 쳐서 풀려 들지 마라"
이 말은
'쾌도난마'와 달리 신중하게 전략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함을 가르친다.
손빈(孫臏)의
위위구조(圍魏救趙)의 고사와
관련되어 있다.
손빈(孫臏)이
제나라에 의탁하고 있을 때, 위나라의 공격을 받고
있는 조나라의 구원 요청을 받는다.
이 때 제나라의
장군 전기(田忌)에게 위나라의 약점을 건드려 조나라를
구하는 전략을 제시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무릇 복잡하고
어지럽게 얽히고 섥힌 일은 주먹으로 쳐서는 풀 수 없고,
싸움은함께 때려서는 말릴 수 없다.
강한 것은
비켜가고 약한 곳을 찔러 형세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하면저절로 풀리게 될 것이다.
夫解雑亂紛糾者 不控捲
救鬥者 不搏撠
批亢擣虛 形格勢禁 則自為解耳
_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