赤壁賦
前 赤壁賦 536字 (朗誦用) 蘇軾
壬戌之秋 七月旣望에 蘇子與客으로 泛舟遊於赤壁之下할새 淸風은 徐來하고 水波는 不興이라. 擧酒屬客하야 誦明月之詩하고 歌窈窕之章이러니 少焉에 月出於東山之上하야 徘徊於斗牛之間하니 白露는 橫江하고 水光은 接天이라. 縱一葦之所如하야 凌萬頃之茫然하니 浩浩乎如憑虛,御風而不知其所止하고 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이라. 於是에 飮酒樂甚하야 扣舷而歌之하니 歌曰 “桂櫂兮蘭槳으로 擊空明兮泝流光이로다. 渺渺兮余懷여 望美人兮天一方이로다.” 客有吹洞簫者하야 倚歌而和之하니 其聲이 嗚嗚然하야 如怨如慕하며 如泣如訴하고 餘音이 嫋嫋하야 不絶如縷하니 舞幽壑之潛蛟하고 泣孤舟之嫠婦라. 蘇子愀然整襟하고 危坐而問客曰 “何爲其然也오” 客이 曰 “月明星稀에 烏鵲이 南飛하니 此非曹孟德之詩乎아 西望夏口하고 東望武昌하니 山川이 相繆하야 鬱乎蒼蒼은 此非孟德之困於周郞者乎아 方其破荊州, 下江陵하야 順流而東也에 舳艫千里오 旌旗蔽空이라. 釃酒臨江하고 橫槊賦詩하니 固一世之雄也러니 而今에 安在哉오 況吾與子로 漁樵於江渚之上하야 侶魚鰕而友麋鹿이라. 駕一葉之扁舟하야 擧匏樽以相屬이라 寄蜉蝣於天地하니 渺滄海之一粟이요 哀吾生之須臾하니 羨長江之無窮이라 挾飛仙以遨遊하고 抱明月而長終하리 知不可乎驟得일새 託遺響於悲風하노라.” 蘇子曰 “客亦知夫水與月乎아 逝者如斯로대 而未嘗往也며 盈虛者如彼로대 而卒莫消長也니 蓋將自其變者而觀之則天地도 曾不能以一瞬이오 自其不變者而觀之則物與我皆無盡也라 而又何羨乎리오. 且夫天地之間에 物各有主라 苟非吾之所有인댄 雖一毫而莫取어니와 惟江上之淸風과 與山間之明月은 耳得之而爲聲하고 目遇之而成色하야 取之無禁이오 用之不竭이니 是는 造物者之無盡藏也오 而吾與子之所共樂이니라.” 客이 喜而笑하고 洗盞更酌하니 肴核旣盡이오 杯盤이 狼藉라 相與枕藉乎舟中하야 不知東方之旣白이러라.
<해설>
적벽부'는 송의 원풍(元豊) 5년(1082) 6월 16일 밤 소식(호:東坡)이 47세 되던 해, 마침 그를 방문한 무도산(武都山)의 도사(道士) 양세창과 함께 달이 밝은 때를 타서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삼국의 영웅 조조와 주유의 풍류를 생각하고, 자신의 덧없는 유인(流人)의 신상을 탄식하며, 최후에 저들이나 자신이나 다 무한한 생명 앞에서는 하등 택할 것이 없는 덧없는 존재라는 것과 무한한 본체의 현상이라고 보면 이 또한 만물이 동일한 것임을 깨닫고 그 개성에 맞추어 이 산 속의 명월과 강 위의 청풍(淸風)과 즐겨 시름을 잊었다고 하는 감회를 서술한 명문이다.
소식(蘇軾․1037~1101)은 북송의 문인으로 지금은 사천성(四川省)에 속하는 미주(眉州) 미산(眉山) 출생이다.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황주(黃州)에 유배되었을 때 그 인근의 동파라는 곳에 설당(雪堂)을 짓고는 동파거사로 호를 지었다. 아버지 소순(蘇洵),아우 소철(蘇轍)과 더불어 삼소(三蘇)라 일컬어지며,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에 이들 삼부자가 함께 이름을 올릴 정도로 문장에 뛰어난 집안이다. 아울러 서예와 회화에도 탁월한 성취를 이뤄 전통 문인의 완전한 상을 구현한 인물로 일컬어진다.1069년 처음으로 벼슬에 들었으나 당시 신종(神宗)은 왕안석(王安石)이 주동이 된 변법(變法)을 채택했는데, 소식은 거기에 반대하여 구법(舊法)을 주장했다. 중국 각지를 떠돌면서 유배생활을 하거나 지방관리를 지내면서 도처에 그의 족적을 남긴 바 있는데,특히 항주(杭州)에서 재직하던 시절 그곳 절경의 하나인 서호(西湖)에 쌓은 제방을 소동파의 이름을 따 소파(蘇坡)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동아시아의 문인들이 가장 즐겨 다룬 소재는 아마 술과 달일 것이다. 서양문학의 두 뿌리를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라 잡았을 때 아폴론이 바로 태양을 의미하는 것과 대비를 이룬다고 보면 그리 틀린 진단은 아니다. 해와 달의 대조는 서양과 동양을 가르는 문명적 상징에 다름 아니다. 지금부터 약 9백 여 년 전인 1082년의 어느 하루, 동아시아의 한 문인이 읊은 달밤의 정취가 세월의 단절을 넘어 아직도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는 사실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물론 그것은 소동파의 `적벽부(赤壁賦)'라는 천하의 명문을 통해서다.
오뉴월 더위가 물러나고 추(秋) 칠월도 보름을 넘긴 이튿날, 기망(旣望)에 황주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동파는 그 달을 즐기고 있었다. 마침 부근 강가에 적토(赤土)와 암벽이 수려한 곳이 있어 뱃놀이를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술을 마련하고 손을 불러 강에 배를 띄웠다. 청풍은 소슬하게 불고 달은 휘영청 밝았다. 술잔을 들어 권커니 잣거니 몇 순배가 돌자 주흥이 도도해지자 절로 노랫가락이 좌중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침 좌중에 피리를 잘 부는 손이 있어 흥을 돋우면서 은은히 울려퍼지는데 소동파가 듣자하니 곡조가 원한을 품은 듯 그리움을 펴듯, 우는 듯 호소하는 듯 하면서 외로운 뱃전에 울려퍼지는 것이었다. 동파는 옷깃을 여미고는 피리 부는 손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피리를 불던 손이 답하기를 『‘달빛이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날아간다’(月明星稀 嗚鵲南飛)는 구절은 조조(曹操)의 시구가 아니옵니까?? 손은 예전의 `적벽대전'을 회고하고 있는 것이다. 옛적 오나라 손권(孫權)의 장수인 주유(周瑜)가 위나라의 조조를 쳐부수던 적벽의 옛일을 회고한 것이다. 강가 저 건너편으로 그 적벽과 흡사한 광경이 펼쳐져 있거늘, 싸움에 임하여 강에 당도하여, 절경을 앞에 놓고 창을 내려놓고 시를 지어 경관을 읊은 것이 어찌 영웅다운 행동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지금 그들 영웅은 간 곳이 없고, 강 건너 적벽만이 남아 그들을 떠올리게 할 따름이니 어찌 인생무상이 아닌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피리 불던 손은 인생이란 본시 창해일속(滄海一粟)이라, 장강의 무궁함이 부럽기만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동파는 넌지시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의 한 구절을 끌어들여 공자의 가르침을 떠올린다.『흐르는 물은 저와 같아서 주야를 가리지 않고 흘러간다.』(逝者如斯夫 不含晝夜).그리고는 흐르는 장강 물을 바라보며 손에게 이렇게 한 수 가르친다. 물은 줄었다 늘었다 하는 모양새가 변화하기를 무상키도 하건만 불변하는 만물의 본체(本體) 입장에서 보자면 물(物)과 아(我),곧 객관 사물과 주체가 무한한 생명에 뿌리박고 있지 않은가. 그리 본다면 장강의 무궁함이 무엇이 부러울 게 있는가. 하늘과 땅 사이에 터 잡고 있는 일체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실로 나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면 터럭 하나도 취하지 않겠지만, 강 위를 부는 맑은 바람과 산중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마주치면 빛을 발하는 법이니, 취해도 막을 자 없으며, 아무리 쓴다 해도 다함이 없으니, 이것은 조물주의 무진장한 창고가 아니겠는가.
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유한한 것이겠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면 사물이든 우리 인간이든 모두 다함이 없는 것이다. 또, 자연은 주인도 없이 아무리 즐겨도 다함이 없으니 걱정 말고 함께 즐기자고 하니 손이 소자의 말에 공감하여 두 사람은 밤새도록 술을 들며 함께 어우러져 풍류를 즐겼다.
<해석>
임술(壬戌)년 가을 7월 기망(旣望)에 소자(蘇子)가 손(客)과 배를 띄워 적벽(赤壁) 아래 노닐 때,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고 물결은 일지 않더라. 술을 들어 손에게 권하며 명월(明月)의 시를 외우고 요조(窈窕) 장(章)을 노래하니, 이윽고 달이 동쪽 산 위에 솟아올라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 사이를 서성이더라. 흰 이슬은 강에 비끼고, 물빛은 하늘에 이었더라. 한 잎의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 일만 이랑의 아득한 물결을 헤치니, 넓고도 넓게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그칠 데를 알 수 없고, 가붓가붓 나부껴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치어 신선(神仙)이 되어 오르는 것 같더라.
이에 술을 마시고 흥취가 도도해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노래에 이르기를 “계수나무 노와 목란(木蘭) 상앗대로 속이 훤히 들이비치는 물을 쳐 흐르는 달빛을 거슬러 오르도다. 아득한 내 생각이여, 미인(美人)을 하늘 한 가에 바라보도다.” 손 중에 퉁소를 부는 이 있어 노래를 따라 화답(和答)하니, 그 소리가 슬프고도 슬퍼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우는 듯 하소연하는 듯하고, 여음(餘音)이 가늘게 실같이 이어져 그윽한 골짜기의 물에 잠긴 교룡(蛟龍)을 춤추게 하고 외로운 배의 홀어미를 울린다.
소자(蘇子)가 근심스레 옷깃을 바루고 곧추 앉아 손에게 묻기를 “어찌 그러한가?” 하니, 손이 말하기를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가 남쪽으로 날아간다.’는 것은 조맹덕(曹孟德)의 시가 아닌가? 서쪽으로 하구(夏口)를 바라보고 동쪽으로 무창(武昌)을 바라보니 산천(山川)이 서로 얽혀 빽빽히 푸른데, 이곳은 맹덕이 주랑(周郞)에게 곤욕(困辱)을 받은 데가 아니던가? 바야흐로 형주(荊州)를 깨뜨리고 강릉(江陵)으로 내려갈 제, 흐름을 따라 동으로 감에 배는 천 리에 이어지고 깃발은 하늘을 가렸어라. 술을 걸러 강물을 굽어보며 창을 비끼고 시를 읊으니 진실로 일세(一世)의 영웅(英雄)이러니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나는 그대와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고기와 새우를 짝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벗함에랴. 한 잎의 좁은 배를 타고서 술을 들어 서로 권하고, 하루살이 삶을 천지(天地)에 부치니 아득한 넓은 바다의 한 알갱이 좁쌀알이로다. 우리 인생의 짧음을 슬퍼하고 긴 강(江)의 끝없음을 부럽게 여기노라. 나르는 신선을 끼고 즐겁게 노닐며, 밝은 달을 안고서 길이 마치는 것은 갑자기 얻지 못할 줄을 알고, 끼치는 소리를 슬픈 가을바람에 부치노라.”
소자 말하되 “손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가는 것은 이와 같되 일찍이 가지 않았으며, 차고 비는 것이 저와 같되 마침내 줄고 늚이 없으니, 변하는 데서 보면 천지(天地)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 데서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오. 또, 천지 사이에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 나의 소유가 아니면 한 터럭이라도 가지지 말 것이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山間)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어서, 가져도 금할 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으니, 조물주(造物主)의 다함이 없는 갈무리로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손이 기뻐하며 웃고, 잔을 씻어 다시 술을 드니 안주가 다하고 잔과 쟁반이 어지럽더라. 배안에서 서로 팔을 베고 누워 동녘 하늘이 밝아오는 줄도 몰랐어라.
壬戌(임술) ; 宋나라 神宗의 연호인 元豊 5년을 가리킴. 赤璧賦(적벽부) ; 北宋의 문인 蘇軾이 赤璧에서 船遊하면서 지은 前後 2편으로 된 詩. 赤璧(적벽) ; 湖北省 嘉魚縣의 東北, 揚子江의 남안에 있는 산 이름. 삼국 시대 吳의 周 瑜가 魏의 曹操의 대군을 격파한 곳. 蘇軾(소식) ; (1036-1101)宋의 文豪. 唐宋 八大家의 한 사람. 자는 子瞻, 호는 東坡,시호는 文忠. 旣望(기망) ; 음력 16일 徐來(서래) ; 천천히 옴. 屬(촉) ; 권하다. 窈窕之章(요조지장) ; 詩經 陳風 月出篇의 제 1장 ‘月出皎兮, 교人僚兮, 舒窈糾兮, 勞心초兮’를 이름. 少焉(소언) ; 잠깐 동안 水光(수광) ; 물의 빛. 縱(종) ; 멋대로 하다. 내버려 두다. 遺世(유세) ; 세속의 일을 잊어버림. 세상일을 일체 버리고 돌보지 아니함. 登仙(등산) ;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감. 空明(공명) ; 맑은 물에 비친 달그림자. 天一方(천일방) ; 먼 저쪽. 如怨如慕(여원여모) ;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함. 月明星稀(월명성희) ; 대인이 나타남에 소인이 빛을 잃음. 鬱乎(울호) ; 초목이 울창한 모양. 周郞(주랑) ; 周瑜. 破(파) ; 무너뜨릴 파 橫槊賦詩(횡삭부시) ; 말을 탄 채로 창을 겨드랑이에 끼고 시를 짓는다는 뜻으로 ‘영웅이 陣中에서도 文雅하고 풍류로움’을 이르는 말. 漁樵(어초) ; 고기잡이와 나무하는 일, 또는 그 사람. 江渚(강저) ; 강가. 麋鹿(미록) ; 큰 사슴과 사슴. 匏樽(포준) ; 박으로 만든 술 그릇. - 2004. 10.22. 靑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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